토리야마 아키라 (1955년 4월 5일) 일본의 만화가. 캐릭터 디자이너. 아이치 현 니시카스가이 군 키요스 쵸 (현재 키요스 시) 출신, 주재. 아이치현립 오코시 공업 고등학교 디자인 과를 1973년에 졸업했다. 혈액형 A형. 부인은 만화가인 미나미 나치 제 27회 (1981년) 쇼카쿠칸 만화상 수상('Dr. 슬럼프') 대표작으로는 'Dr. 슬럼프', '드래곤 볼' 등.
개요
1978년 '주간 소년 점프'(슈에이사)에 게재된 단편 '원더 아일랜드'로 데뷔. 대표작 'Dr. 슬럼프' '드래곤 볼'은 만화, 애니메이션 양쪽 모두 대 히트를 쳤고, 현재도 일본, 해외를 불문하는 인기를 자랑한다. 압도적인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독자가 보기쉬운 구성, 스크린 톤을 거의 쓰지 않는 독특한 화풍, 투명하고 상쾌감 넘치는 독특한 색채, 어린 시절 디즈니 영화에 영향을 받았기에 미국 코믹 터치 스타일이기도 하고 일본적이기도 한 그의 작풍은 전세계에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동물이 안간의 말을 하면서 평범하게 인간 사회에 녹아있기도 하고, 면밀하게 그려진 여러가지 독창적 메카 디자인 등, 이야기 본편 이외의 부분에 대한 묘사도 특징적이다. 서브 캐릭터에 동물이나 외계인이 많은 것은 평범한 인간만을 그려서는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동물이나 외계인, 로봇을 그리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면밀히 크려진 메카닉은 '스타 워즈' 외에 보아왔던 여러가지 SF 영화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고, 본편의 줄거리를 그리는 것 이상으로 메카를 그리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이러한 요소 또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요인이 되고 있다.
'Dr. 슬럼프', '드래곤 볼'과 대히트작을 연달아 그려내어 '점프 황금시대'를 열었던 최대 공로자로서, 원 '주간 소년 점프' 편집장 니시무라 시게오는 자신의 저서에서 "소년 점프 6백만부의 쾌거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파괴적인 파워를 빌려서 처음으로 실현 할 수 있었던 것이란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연재를 시작한 다음에는, Dr. 슬럼프 1년 째에는 3일에 한 번밖에 자지 못했다, 최고 연속 철야 6일을 기록했다. 펜 선을 넣었던 기억이 없는 회가 있다,는 등 지극히 바쁜 시간을 보냈다. 드래곤 볼 때에는 철야를 안하게 되었지만 좀처럼 연재를 끝내지 못하고 체력, 기력 양쪽 모두 피로가 천근만근이었다. 드래곤 볼 종료 후에는 장기 연재를 사양하고, 그 후의 신작 만화는 단편이나 단행본 1권 정도로 끝나는 만화만을 그리고 있다. (한 가지 요인으로서, 이 정도의 인기 작가이면서도 어시스턴트를 한 명밖에 두지 않았고, 자신의 캐릭터나 배경 등, 거의 대부분에 직접 펜 선을 넣는 등, 완성도 높은 만화를 추구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 현재는 본인과 부인 둘이서도 해낼 수 있는 분량의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주간 소년 점프'를 중심으로 한 점프 계열 잡지에서의 만화 집필과 더불어, 게임 소프트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1탄부터 캐릭터 디자이너(몬스터 포함)로서 1985년 이래, 현재까지 활약 중이다. 최근 작품으로는 '블루 드래곤'. '드래곤 퀘스트 소드 가면의 여왕과 거울의 탑' 등이 있다.
드래곤 볼 종료 후에는 Mac을 쓰기 시작하여 현재는 제작 과정에 Mac을 사용한 작품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드래곤 볼의 종료 시기에는 팔에 통증이 있었는 듯. "Mac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림을 그만 그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의 소년 만화뿐만이 아니라 무수한 미디어에 거대한 영향을 준 인물로, 만화가 뿐만이 아니라 모든 다른 장르에 토리야마의 팬이 많이 존재한다. 2007년 현재, 활약하는 만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서, 소라치 히데아키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초보 만화 연구소'를 읽고 만화를 배웠다거나, 오다 에이치로나 키시모토 마사시가 '드래곤 볼'의 팬이라거나, 사와이 요시오가 증간호에 '드래곤 볼'의 패러디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또 '주간 소년 점프'의 독자 코너에는 반드시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드래곤 볼' 소재가 실려있었고, 타 잡지의 독자 코너에도 확실하게 코어한 팬들 밖에 알 수 없는 '드래곤 볼' 소재가 때때로 실렸다. 도라에몽(원작)에서는 'Dr. 스톱 아바레짱'이라는 가공의 만화가 등장한 적이 있다. (출판사가 다른 잡지의 만화를 소재로 등장시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주된 작품
'Dr. 슬럼프', '드래곤 볼'의 두 작품은 국민적 대히트작으로서 인기를 받았다. 최초 연재작 'Dr. 슬럼프'는 당초보다 인기 폭발. 애니메이션 화도 되었으며 소년 만화였지만 소년 소녀를 불문하고 폭넓은 독자,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지지를 받아 애니메이션의 최고 시청률은 36.9%를 기록, 역대 애니메이션 평균 시청률 3위로, 사회 현상을 일으킨 국민적 만화가 되었다. 연재는 5년정도 계속 되었고 단행본은 18권까지 나왔으나 본인이 소재 부족을 이유로 연재를 종료하였다.
'Dr. 슬럼프' 종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한 '드래곤 볼'은 당초 앙케이트에서 그다지 큰 반향이 없었으나, 서서히 지구를 지키는 배틀로 이야기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인기가 대폭발. 특히 소년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미디어 믹스 노선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어 다양한 비디오 게임, 캐릭터 굿즈가 발매 되었다. 이 작품은 10년 가까이 연재가 되었고 단행본도 42권까지 나왔다.
빙영 작품은 달라도 1981년에서 1999년까지, 후지 테레비 계열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7시 반에는 토리야마의 작품을 방영했다. 후반에 '원작이 끝났기 때문에 스탭들이 만들어낸 작품'을 제외하면 두 작품 다 대체적으로 약 20% 이상의 고 시청률을 계속 유지했던 역사적 애니메이션 작품이었다.
'드래곤 볼'의 인기는 세계로 확대되어 미국에서는 라이코스의 검색 랭킹 1위가 된 적도 있는 등(아시아나 구미뿐 만이 아니라 모로크 등 이슬람권의 나라에서도 인기가 있다), 세계적인 지명도를 자랑한다.
장기 연재시 굉장히 힘들었기 때문에 '드래곤 볼' 종료 이후, 만화는 '월간 소년 점프' 등 점프 계열 지에서의 단편, 또는 단기 집중 연재 작품을 그리는 정도로, 만화가로서는 사실상 절반은 은퇴한 상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단, 실제로는 현재 게임 캐릭터 디자인과 원작자로서의 저작권 관리등의 일로 바쁘기 때문에 은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다.
드래곤 볼 종류 이후에 그린 주된 작품으로는 'COWA!' '카지카' 'SAND LAND'(전부 주간 소년 점프의 단기 집중 연재로서 게재되었다) '네코 마인'(단편) '천사 토치오'(그림책)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SAND LAND'와 '네코 마인'은 인기를 모았고 'SAND LAND'는 북미, 독일, 프랑스 그 외의 지역에도 다수 번역 출판되었으며 '네코 마인'도 시리즈화 되었다.
아이치현 유일의 플라모델 메이커인 파인 몰드의 로고 마크를 담당하기도 했다. 자신을 새인간 또는 가스마스크를 쓴 로봇으로 그려서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킨 적이 있다.
데뷔까지의 경위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다지 유복한 가정이 아니었던 토리야마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만화를 약간 읽었으나, 그 이후에는 거의 읽을 기회가 없었다(미츠코의 방(토크쇼)에서)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자신이 있어서 고교 졸업후에는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샐러리맨으로서 3년간 근무하면서 디자인 센스를 닦았으나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퇴직했다. 퇴직후에는 얼마간 매일 마음 가는대로 생활했으나, 당연하게도 얼마지나지 않아 돈 문제로 곤란해지게 된다.
마침 그럴 때, 가끔씩 읽어보던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신인상 응모 작품을 모집하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띄였다. 상을 받으면 상금 50만엔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심기일전한 그는 상금을 위해서 23세때 처음으로 본격적인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주간 소년 매거진'의 마감에 맞추지 못하고, 한 달에 한번이 아니라 매주 작품을 모집하고 있었던 '주간 소년 점프'에 작품을 투고하게 된다. 최초의 단편 작품인 '원더 아일랜드'는 잡지에 실렸는데, 토리시마씨에게서 앙케이트 인기가 최하위라는 것을 듣고 낙담하지만, 그 분한 마음을 힘으로 바꾼 듯이 만화를 그리기로 결정한다.
후일 토리야마의 담당 편집자가 되는 토리시마 야스히코는 토리야마가 작품 속의 그림 문자 (의성어, 의태어 등, 서식 이외의 문자를 말한다)를 카타가나가 아니라 알파벳으로 그리던 것과 그림이 깔끔하게 완성되어있는 부분에서 센스를 느끼고 '지금은 서툴지면 열심히 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토리야마에게 어드바이스 했다. 토리야마는 사정없이 원고를 돌려보내는 토리사키 아래에서 열심히 수행, 만화가로서의 기량을 닦았다고 한다. (이 시기, 1년간 퇴짜맞은 원고는 500페이지에 달했다고 한다.)
그 사이 몇 개 정도의 단편을 '주간 소년 점프'와 타 관련지에서 발표했다. '걸(Girl) 형사 토마토'라는 단편 작품에서 (토리야마는 싫어하는 것 같지만) 토리시마에게 떠밀려 그린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의 평판이 좋았던 듯, 다음 연재가 결정되었다. 토리야마는 이른바 '박사물'을 테마 삼아 당초에는 박사였던 노리마키 센베에(주인공 박사님)를 주역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하라는 토리시마의 조언으로 로봇인 아라레를 주인공으로 하였다. 이렇게 토리야마가 24세 때 시작한 Dr 슬럼프는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대히트 작품이 되었다. 만화 수행 이력과 수상 이력이 얼마 없었던 이른 단계의 젊은 만화가가 그린 최초의 연재 작품이 이처럼 국민적 작품이 되었던 일은 전례가 없었다.
TV출연 이력
최근에는 매스컴 노출을 꺼려하여 인터뷰 기사나 본인의 사진이 매스컴에 게재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유는 단순하게 작은 거리에서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싫기 때문인 것 같다. 머리숱이 적은 것이 알려지는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2006년 12월 7일 토리야마 아키라를 방문한 사쿠마 아키라의 일기로부터. 해당 사진에도 얼굴에 가스 마스크가 합성되어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테츠코의 방(토크쇼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고, 1981년 5월 25일 방영된 NHK 특집 '내 청춘의 토키와 장(*일본 만화의 태동기를 상징하는 건물)~ 현대 만화가 입지전~'에 아라키 히로히코와 함께 등장한 적이 있다. 'Dr. 슬럼프'의 단행본의 빈 페이지에도 근황 만화나 자신의 사진을 적극적으로 싣고있다. 최근에는 비디오 게임 'BLUE DRAGON'의 CM에 출연했다. (입 주변 모습만)
에피소드
*토리시마 카즈히코에 의하면 집은 가난했으나 양친 모두 느긋한 성격으로, 저녁을 먹을 돈이 없으니까 그 대신 둘이서 왈츠를 췄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배고팠던 토리야마는 만화를 그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본명이 아니라 미즈타니 키사쿠라는 펜 네임을 쓰려고 생각했지만 결국 본명으로 데뷔했다. (본인이 말에 따르면 약간 후회하는 것 같다)
*무명 시절, 토카이 라디오 방송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라디오 방송 '미드나이트 토카이'에 출연하고 있었던 쇼후쿠테이 츠루베(만담계 텔런트)와 얼굴을 알고 지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Dr. 슬럼프' 단행본 제1권에 츠루베가 등장했다. (2006년 2월 21일 방송된 '츠루의 방'(TV 프로그램)에서 발언)
*토리야마는 독신 시절, 단칸방에서 만화 원고를 그리고 있었다. 또한 모델건을 벽에 장식하거나 다른 만화가들의 사인을 벽에 장식했었기 때문에 모델건 오타쿠, 사인 오타쿠라고들 했었다. 또한 독자에게서 받은 팬티가 누렇게 될 정도의 애연가이기도 하며, 마감 직전에는 하루 100개피 이상 피운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토리야마는 때때로 오토바이를 타고 잣집에 간다. 아시스턴트인 히솨시도 함께라고 한다. 여기에서 그들은 자주 잡담을 하거나 커피를 홀짝이면서 주간지나 만화를 연신 읽어댔다고 한다. 또한 찻집에서 돌아갈 때 바이크의 엔진이 고장나 발로 밀면서 돌아왔다는 에피소드도 있다(드래곤볼 10권 실화 낙서 만화 '그 시절의 나'로부터).
*마니아로서의 파워풀함은 유명하다. 프라모델 제작 실력은 프로급으로, 주식회사 타미야가 주최했던 1/35 피규어 개조 콘테스트에 입상한 적이 있다. 또한 영화 '스타 워즈',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전투 메카 자붕글', '바람 계곡의 나우시키' 등의 SF작품에 열렬하게 빠져들어서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것들을 패러디(때로는 그대로)하여 등장시키기도 했다.
*영화 '고지라'에서 엑스트라 출연을 한 적이 있다. 본편에서는 확인 할 수 없지만 일부 포스터(시판도 되었다)에 나와있는 군중 속에서 확실하게 확인 할 수 있다.
*오오토모 카츠히로와 미야자키 하야오와 직접 면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향은 확실히 받고았다. Z편에서 기를 날렸을 때의 붕괴 묘사는 'AKIRA'없이는 있을 수 없었고, 오오토모의 '동몽'에서는 'Dr 슬럼프'에서 아라레가 쓰고 있는 모자가 나오는 등, 서로 리스펙트를 주고받는 관계였다.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텝에게 지시를 할 때 그림 콘티에 '드래곤 볼 풍으로'라고 쓰기도 한다.
*주간연재 때에는 거의 원고를 펑크내지 않았다. 나고야에서 샐러리맨을 경험했던 그는, 사회인은 시간을 엄수한다는 당연한 철학이 있는 듯하다. 그것이 마감을 지키는 이유라고 한다(단, 샐러리맨 때에는 지각하거나 러프한 복장으로 출근하여 상사에게 혼났던 적이 자주 있었는 듯 하다). 게다가 담당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만약 원고를 펑크낸다면 동경으로 와야 할 거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가고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원고를 완성했다고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토리야마와 마찬가지로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재능을 알아보기도 한 만화가 동료인 카츠라 마사카즈와 교류가 있다. '윙 맨'의 작품 중, '생도회 토리야마'나 '미스터 야마리토'로서 토리야마가 등장한다. 거꾸로 'Dr. 슬럼프'에서는 완전한 시골 사람으로서 카츠라가 등장했으며, 오공이 계왕을 웃기기 위해 사용한 개그도 원래는 카츠라가 생각한 것이라고 한다. 또 퓨전 포즈도 카츠라 마사카즈와 함께 생각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굴지의 그림 실력과 데셍력을 가지고 있으나, 사실 대단히 귀찮아하는 성격이라고 몇 번이나 각종 인터뷰에서 대답했다.
--당초 토리야마는 G펜으로 선을 그렸으나, 'Dr. 슬럼프'의 후반에서는 시간 단축을 위해 선의 강약이 없는 사인펜으로 펜을 넣는 회수가 늘어났고 확실하게 터치가 달라지게 되었다. 또한 '비를 그리는 것이 번잡하다'고 말하면서 만화가 아내와 결혼할 때까지 펭귄 마을에 비를 내린 적이 없고, 마을의 설정으로 삼은 것도 배경이 간단하니까, 와 같은 이유였다. 또한 드래곤 볼 후반에 선의 강약이 적은 터치가 늘어난 것으로 봤을 때 카브라 펜을 사용했다고 생각된다.
--'드래곤 볼'에서는 초 사이어인은 머리를 검게 칠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 단축이 되었다, 프리저의 최종 형태도 간략하게 디자인하여 작화의 수고를 덜었다(사실 프리저가 느긋한 상황이었던 제 3형태에서 바로 최종 형태로 변신했다), 그리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가지같은 배경은 바로 폭발시켰다, 등의 에피소드가 있다.
--애시당초 스크린 톤을 쓰지 않았던 것도 자르고 붙이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하나의 그림을 철저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세한 스토리가 있는 만화는 서투르다는 설도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의 짜임은 상당히 평가받고 있다.
*'러브 스토리를 그리는 것이 싫다' 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노리마키 센베에와 야마부키 미도리, 오공과 찌찌의 결혼까지의 과정 등은 쏜살같이 처리했다. 크리링과 18호가 결혼에 이르는 에피소드도 머리속에서는 생각해 놓았던 것 같지만 '부끄럽다'는 이유로 그릴 생각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러브 스토리를 싫어하는 면이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애니메이션 때에 애착으로 캐릭터 만들기에 임했던 후루야 토오루, 츠루 히토미, 쇼 마유미 등의 성우진이 저마다 담당하던 캐릭터에 대한 차가운 묘사에 괴로웠던 적도 있다고 한다.
*토리야마는 '기가 센 여성을 좋아한다' 고 말하고 있으며 나긋나긋한 여자아이를 그리는 것에 서툴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는 언제나 기가 센 스타일의 성격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실제로 '드래곤 볼'에서 주요 남성 캐릭터와 연애, 부부 관계로 발전하는 여성(찌찌, 부르마, 18호, 비델)들은 기가 셌고, 전사로서는 톱 클래스의 오공이나 오반도 덤빌 수 없었다. 여성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지만 주위의 권유로 결혼한 아내와만큼은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한다.
*토리야마는 자신이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스토리 만화가라기보다는 개그 만화쪽에 가까운 인간 이라고 말하고 있다. (드래곤볼 완전판에서)
*현재의 소년만화를 시작으로 모든 미디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점프' 뿐만이 아니라 작가, 만화가에 토리야마의 팬들이 다수 존재한다.
--2007년 현재 활약하는 만화가들에게도 크고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소라치 히데아키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초보 만화 연구소'를 읽고 만화를 배웠고, 오다 에이치로나 키시모토 마사시가 '드래곤 볼'의 팬이기도 하며, 사와이 오시오가 증간호에서 '드래곤 볼'의 패러디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또한 주간 소년 점프의 독자 코너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드래곤 볼 소재가 채용되었고, 타 잡지의 독자코너에서도 확실한 코어 팬층만 알 수 있는 드래곤볼 소재가 때때로 존재했다
--도라에몽(원작)에서는 'Dr. 스톱 아바레짱'이라는 가공의 만화가 등장한 적이 있다. (출판사가 다른 잡지의 만화를 소재로 등장시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게게게의 키타로'로 등으로 알려진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는 'Dr. 슬럼프'와 '드래곤 볼'의 초기~마주니어편까지 토리야마의 역량에 주목했던 것을 당시의 인터뷰에서 말했었다. (초기에는 요괴 퇴치물이었기도 했기 때문).
*'드래곤 볼'의 단행본(통상판 11권)에서는 토리야마와 아들의 사진이 표지 뒤에 실려있었다.
*토리야마 본인은 '드래곤 볼'에서 피콜로 대마왕을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토리야마가 그린 캐릭터 중에서는 처음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살육하는 등, 본격적인 악역이었기 때문에 힘이 들어갔다고 한다). 완전판의 뒷표지에서 레이스 최후에 등장하는 점에서도 애착을 엿볼 수 있다.
*아직까지 '드래곤 볼'등에 의한 저작권 수입이 있기 때문에 만화가 중에서도 상당한 고액 납세자이다. 그 총 자산은 일설에 의하면 수백억(엔)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캐릭터 디자인을 맡고 있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토리야마 아키라가 관여하고 있는 컨텐츠는 다방면에 걸친 것이 많은 것도 이유이다.
*아동지향 사회과 교재 '사회 교과서 어떻게 여기까지 올까요 시리즈-1 만화 주간지 오늘 발매' (PHP 연구소, 1989년)은 토리야마가 그린 '드래곤 볼'의 원고가 주간 소년 점프로서 서점에 전시될 때까지의 과정을 소개한 책으로, 원고를 집필하는 토리야마 아키라가 실려있고, 작업장의 모습과 생원고, 자택에서 개와 놀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또 편집 담당자인 토리시마 카즈히코의 사진도 실려있다.
작품 리스트
Dr 슬럼프 DRAGON BALL 토리야마 아키라 작극장 - 단편작품집 토리야마 아키라의 초보 만화 연구소 : 1982년부터 1984년까지 플래쉬 점프에서 연재 / 원작 : 사쿠마 아키라 LADY RED - 1987년에 '슈퍼 점프'에 게재 저금전사 캐쉬 맨 GO! GO! ACKMAN 우주인 페케 - 1996년에 '주간 소년 점프'에 게재. 전 2화 TOKIMECHA - 1997년에 '주간 소년 점프'에 게재 마신 마을의 BUBUL - 1997년에 '주간 소년 점프'에 게재 하이쿄의 마히마히 - 1999년에 '주간 소년 점프'에 게재 COWA! 카지카 SAND LAND TOCCIO THE ANGEL 천사 토치오 - 그림책 작품 네코마인 시리즈 -네코 마인이 있다 -네코마인 미케 -네코마인 Z CROSS EPOCH - 2006년에 '주간 소년 점프'에 게재. 오다 에이치로와의 합작 여기는 나메크 성 드래곤 공원 앞 파출소 - 2006년 '여기는..파출소' 연재 30년을 기념하여 발표된 '초 여기 파출소(超こち亀)'에 게재. 아키모코 오사무와의 합작. Dr. MASHIRITO ABALE - 2007년 '월간 소년 점프'에 게재.
캐릭터 디자인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 드래곤 퀘스트 - 드래곤 퀘스트 II 악령의 신들 - 드래곤 퀘스트 III 그리고 전설로... - 드래곤 퀘스트 IV 이끌려진 자들 - 드래곤 퀘스트 V 천공의 신부 - 드래곤 퀘스트 VI 꿈의 대지 (몬스터의 일부는 나카츠루 카츠요시) - 드래곤 퀘스트 VII 에덴의 전사들 (메인 캐릭터, 몬스터 담당. 그 외의 몬스터는 나카츠루 카츠요시와 카네코 오사무) - 드래곤 퀘스트 VIII 하늘과 바다와 대지와 저주받은 공주 (서브 캐릭터는 레벨 파이브의 스텝) - 드래곤 퀘스트 IX 별하늘의 수호자 (2007년 발매 예정)
별로 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도 뭔가 몸으로 뛰는 게임을 해서 1등을한자가 아주 개뻘쭘하게 중간의 왕좌에 앉아 있는 보기흉한 이벤트 였다. 별 관계 없지만 이 바로 다음 사람인가가 마지막 참가자였는데 1등기록을 갱신해버려서 저분은 흉하게 한참 앉아 있기만 하다가 상품은 못받았을것이라는..
테크모 아가씨. 개인적으로 몇안되게 관심있게 보았던 게임인 닌자가이덴의 ds판 설명을 하고 있다.
직접 몸소 닌자가이덴ds를 시연해주시던 아가씨 고급테크닉(?)인 이즈나오토시를 잘 못써서 다소 매끄럽지 못한 진행을..액션게임인데 버튼을 어찌 누르라고 세워서 플레이를 하나 했더니 터치펜만으로 조작을 하는 나름 신선한 게임이었다는
안노 히데아키 (남성, 1960년 5월 22일) 일본의 영화감독, 애니메이터.
야마구치 현 우베시 시 태생.
야마구치 현립 우베시 고등학교 졸업.
오사카 예술 대학 예술학부 영상계획 학과(현재 영상 학과) 제적.
혈액형 A형. 부인은 만화가. 에세이스트 안노 모요코.
대표작으로는 '신세기 에반겔리온',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등.
'신세기 에반겔리온'은 제 18회 일본 SF대상을 수상.
개요
인간의 에고와 추함을 끄집어내는 심리묘사, 실사 이상이라는 평가까지 듣는 메카 조형 및 영상 연출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의외의 방향에서 잡는 독특하고 트리키적인 카메라 워크는 '대단하다' '신선해서 재미있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멀미가 날 것 같다' '복잡하다'는 비평을 듣는다. 또한 작품 속에 전신주, 신호등, 차단기, 비상구 마크 등의 짧은 컷을 삽입하는 경우가 많다. (어째서 이러한 물체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미야다이 신지(사회학자)가 세대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연출하는 작품에는 패러디, 오마주가 반드시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보이고(크게 보면 대사, 설정, 스토리를 들 수 있고, 세세하게 본다면 5미만의 짧은 신에 들어가 있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상당한 영화, 아니메, 만화 마니아가 아니라면 간파할 수 없는 것도 많이 존재한다. 유명한 것으로는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군, 작풍(톱<1>, 나디아<2>, 에바<3>의 설정, 스토리, 구성등에 일부 유용 되어있다) 오카모토 키하치(영화감독)의 블루 크리스마스, 격동의 쇼와사~오키나와 결전(에바 설정의 일부에 들어가 있다<4>) 마츠모토 레이지의 우주전함 야마토(1974년 TV 애니메이션. 나디아의 메카 조형에 참고가 되었다) 해저 군함(1963년의 특촬 영화. 나디아의 아틀란티스 제국과 네모 선장의 설정)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이 애니메 오타쿠, 특촬 마니아인 점과 '지금 시대에 진짜 오리지날 같은 것은 없다<5>'는 생각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한다.
내력
학생 시대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과 특촬, 대규모 건조물 등에 푹 빠져있어서 자주 그러한 그림을 그렸었다고 한다. 고교시절에는 미술부에서 부장을 맡기 위해 그림 실력을 높였고, 특히 메카의 묘사는 압도적이었다고 후일 기숙사에서 알고 지냈던 야먀가 히로유키(감독, 각본가, GAINAX 대표)가 말했다. 고교 재학시절에는 '그룹 SHADO<6>'라는 아마추어 영상제작 그룹에도 소속되었었다.
고교 졸업후에는 취직하지 않고 놀기만 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하여 재수 한 뒤, 당시는 학과 시험이 없었던 오사카 예술 대학에 입학. 실기시험 준비는 미야자키 하야오등의 그림 콘티같은 것을 보면서 공부했다고 한다<7>. 입학 당초, 조를 나눌때 야마가 히로유키, 아카이 타카미(일러스트레이터, 전 GAINAX 이사, 나인 라이브스 대표)와 그룹을 만든다. 당시 동급생이었던 만화가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증언에 의하면 조를 만들지 못해서 죽을 상을 하고 있던 안노를 보고 말을 걸려고 생각했으나, 멀리 있었기 때문에 그만뒀다고 한다. (후일 시마모토와는 교류를 가지게 되고 데뷔 때의 사인을 가지고 있다.) 같은 학과의 동기로는 미나미 마사히코(애니메이션 프로듀서), 니시모리 아키라가 있다.
재학 중에 아르바이트로서 애니메이터를 하고 있었고, 2학년 때 독립 제작 애니메이션에 열중하게 되어 공동 실습에만 겨우 출석하는 등, 출석률도 나쁜 상황에서 학비도 전혀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3학년 때 방교 처분을 받는다(서클은 SF연구회 소속). 그 후, 오사카에서 열리던 SF대회에서 아마가 등과 독립 제작 영화 그룹 '다이콘 필름'의 주요 멤버로 참가했다. 대회에서는 이례적이었던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특촬 작품 등을 제작, 프로까지도 놀래킬 정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23세 때 대학에서 제적당했지만, 이때에는 이미 '바람 계곡 나우시카'에 참가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애니메이터 시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 날개' 등의 상업 작품에 참가, 메카와 폭발신 등의 이펙트 애니메이션에 손을 댄다. 이 계통의 씬은 팬들 사이에서 '안노 폭발'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특히 스페셜 이펙트 아티스트라는 직함으로 참가했었던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의 클라이맥스는 압권으로, 전투, 로켓 발사 신은 그림 콘티에서부터 작화까지 전부 혼자서 해냈다. 셀을 1콤마에 9장 겹쳐서 3초 사이에 셀 매수가 250매까지 올라가는 컷도 있다고 한다.
극장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사람 손이 부족했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로서는 신인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원화가로서 채용되었다. 그가 담당했던 거신병의 등장씬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단, 안노 본인은 중할 매수등을 예로 들면서 "움직임이 빨라서 저건 실패작이었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그것이 상당히 불만이었는지 감독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멋대로 타임 시트를 바꿔쓴 뒤 그대로 동화쪽으로 돌려버렸다. 해당 작품의 팜플렛에서는 '거신병의 저주를 받아 배탈이 난 A씨'라는 제목으로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안노는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의 사카노 이치로와 함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스승으로서 모시고 있다. 또한 '기동전사 건담'의 토미노 요시유키를 포함해 그처럼 애니메이션 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업에 참가 할 수 있었던 것을 대단히 운이 좋은 일이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특히 미야자키에게서는 감독으로서 일을 진행시키는 방법 등을 배웠다고 한다<8>. 한편 미야자키와는 대립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안노가 미야자키 감독 작품을 '재미없는 영화'로 평가했고, 미야자키도 에반겔리온을 '필요없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혹평, 모든 화를 다 본 다음에는 걱정되어 안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인물을 그리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에 (감독에게서 거신병 신에서는 인물도 그리도록 지시 받았지만 결과가 너무 나빴기 때문에 거꾸로 감독 본인에게 부탁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무렵에는 원화, 동화 관계를 혼자서 다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여 감독, 연출의 일을 메인으로 전환한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막 창립된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가이낙스를 지탱하는 인물이 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의 활동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제작 종료 후 실사 방면으로 진출하는데, 그 후 애니메이션 일을 할 때는 이른바 '실사계'의 성우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것은 성우의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쿠하라 쿠니히코(애니메이션 감독, 프로듀서)의 소개로 연극 무대에도 대단히 매료되었지만, 아직 매듭짓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인터뷰에서 대답했다.
2002년 3월 26일에 만화가 안노 모요코와 결혼했다. 중매인은 미야자키 히데오였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는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소개였다. 안노 자신은 그녀의 '해피 매니아'등을 읽고 있으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우연이기는 하지만 안노 모요코의 펜네임의 성도 '안노'였기 때문에 '더블 안노'로서 화제가 되었다. 결혼 생활은 안노 모요코의 만화 작품 '감독 부적격(한국에도 정식출판중)'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2006년에 자신이 직접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 카라를 창립, 지금까지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던 가이낙스의 상담역에서는 물러난다. 단, 안노의 공식 사이트가 가이낙스의 공식 홈페이지내에서 운영되고 있고, 가이낙스 공식 사이트의 스탭 소개에도 안노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지만 인연을 끊은 것은 아니다. 타사의 일이나 자신의 예능 활동 등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 스튜디오에서의 제1작은 2007년 여름 공개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의 4부작 중 전편)이다.
인물
채식주의
채식주의자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영향 탓인지 그의 작품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나디아와 '신세기 에반겔리온'의 아야나미 레이는 채식주의자이다. 또 신세기 에반겔리온에서 육식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씬에 대해서도 육식에 대한 콤플렉스로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밖에도 버섯등, 균류 또한 '세균이라서'라는 이유로 먹지 않는다.이상한 바다의 나디아 제 25화에서 주인공 장이 버섯을 먹고 환상을 보는 씬이 있는데, 이것은 당초 나디아가 먹을 예정이었으나 감독이었던 히구치 신지가 나디아의 모델이었던 안노에게 "버섯 먹어요?"하고 물었을 때 "아니 난 안먹는데"하고 대답했기 때문에 장에게 폭탄이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감독 부적격, 스키조 에반겔리온 등에서 묘사되어 있는 식생활을 보자면 채식주의자라기보다는 편식가이기 때문에 고기를 싫어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본인에 의하면 자신이 고기를 먹고 있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라고 하며, 고기의 맛 자체에 대해서는 괜찮은 것 같다. 일례로 삿포로 포테이토(과자 이름)의 바베큐 맛은 좋아한다. 햄 샌드에서 햄만 빼고 먹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10>. 본인은 어떤 서적에서의 강담회에서 "채식 주의자가 아니라 먹을 수 있는 것이 야채뿐인 거다"라고 말하고 있다.
성격
감독 데뷔 작품 '톱을 노려라!'에 관여하던 시기에는 대단히 성격이 급해서, 배경 리테이크 시 '그럴 시간이 없다'고 거절 당한 안노가 '젠장! 젠장!'하고 울면서 록커가 부서질 때까지 걷어차고 벽을 쳐서 구멍을 냈다는 일화도 남아있다. (결국 '우는 놈한테는 못당해'라면서 마지못해 미술감독 승인하에 하룻밤 걸려 리테이크 되었다)<11> 이 에피소드에서도 볼 수 있지만 완벽주의자로서 모든 것을 콘트롤을 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고, 또한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될 것 같지 않다'면서 에반겔리온 극장판의 모습에 학을 떼버린 것이라 생각된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제작시에는 소위 '섬 편' 때에 한국에 작화를 의회했었지만 그 완성도가 나빠서 격노한다. (LD발매시에 주요 스텝들이 자비를 털어서 다시 만든 화와 사츠카와 아키오와 함께 다시 만든 총집편 화가 있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제작시에는 티비 방송국과의 알력싸움으로 감독 강판 등도 경험한다(잠시 크레디트에서 빠진 것 뿐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온화해졌다'는 것 같다<12>.
'톱을 노려라!'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 출연했던 성우인 히다카 노리코가 담당하던 라디오 방송 '하이파 나이트 금요일'에 몇 번 정도 게스트 출연해서는 독설을 풀어냈다. '나디아' 출연시의 히다카 노리코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심한 일을 당해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어!' 인 것 같다. 또 '나디아'의 CD에서 히다카의 필기 인터뷰의 '서투른 것' 항목에 멋대로 '어려운 한자를 못 읽는다'고 더 써넣었다.
말버릇이 '그거 그거(そ、そ)'고, 항공모함 매니아였기 때문에 히다카가 '항공모함그그그거(空母そそそそ)'라는 별명을 붙였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보컬 콜렉션에서 작사시에 그 이름을 사용. 또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제 34화의 작화 감독의 명의로서도 사용했다. 덧붙여서 본인은 항공모함 매니아가 아니라 전함 매니아라고 주장.
애니메이션, 특촬 매니아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미소녀전사 세일러 문'과 특촬물의 마니아이기도 하다는 점은 잘 알려져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에 대해서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넘처흘러 '역습의 샤아 친구 모임' 동인지를 출판했을 정도. 이 책에는 유우키 마사미(만화가), 미키모토 하루히코(일러스트레이터), 키타즈메 히로유키(애니메이터, 일러스트레이터), 이쿠하라 쿠니히코, 스즈키 토시오(프로듀서)등의 호화멤버가 참가했고, 안노와 오시이 마모루, 토미노 요시유키와의 대담 등이 수록되어있다. 해당 서적에서는 후일 만들어진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이어지는 안노의 생각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에 안노 히데아키를 깊게 알기 위한 텍스트로서도 중요한 책이다. 또한 OVA '기동전사 건담 MS IGLOO'도 마음에 드는 작품인 듯,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포교 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동일 작품의 공식 홈페이지에도 팬의 한 사람으로서 등장하여 기동전사 건담에 대한 애정을 풀어놓고 있다.
'미소녀전사 세일러 문'에 대해서도 열렬한 팬으로, 당시 해당 작품의 티비 시리즈의 이펙트 애니메이션의 원화를 도울 정도였고, 동일 작품의 동인지를 수집했었다. 또한 자기 작품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중요 인물 성우로 미츠이시 코토노(츠키노 우사기역, '세일러 문'의 주역)을 기용하기도 했다.
특촬 작품으로는 '울트라 맨' 시리즈의 왕팬으로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울트라 맨' '돌아온 울트라 맨'에 열심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에 '울트라 맨' 8미리 영화를 독립 제작한 것으로 유명. 수도 동경에 정기적으로 괴수가 출몰, 그 괴수를 물리치기 위한 조직이 있어서 긴급 출동한다는 '울트라 맨' 시리즈의 특징적인 설정과 전개가 그대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이어져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고질라'나 '가메라'의 영향은 그다지 없다고 한다. 또한 가장 많이 본 영화로서는 '격동의 쇼와사~오키나와 결전' 을 꼽고있다.
그 이외에도 시대극 '오에도 조사망'의 팬이기도 하여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같은 테레비 도쿄 계열에서 방송된 것을 계기로, 알고 지내던 테레비 도쿄 관계자에게 '오에도 조사망'의 소프트화 작업에 대해 힘을 쓴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 외
'애니메이션, 만화에 의존하는 것은 그만두고 밖으로 나가보면 좋겠다. 그건 그냥 그림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 애니메이션 계열의 작품은 양작으로 평가 받는 경우가 많으며 해외에서도 큰 평가를 얻고 있으나, 실사 작품의 감독으로서는 애니메이션 작품 만큼의 평가를 얻고 있지 못하다. '비한 바다의 나디아' 이후로 아니메, 실사 양쪽 모두에 마사유키가 항상 스탭으로서 참가하고 있으며, 안노 감독의 안사람 역할을 맡고있다.
2005년 닛산 자동차의 Touch Your NISSAN 캠페인의 CM에 출연했을 때에는 패션에 지극히 무감각하던 안노라고 생각 할 수 없는 세련됨을 보여주어 관계자, 지인, 팬 모두의 반향이 커다랐다. 외출시의 패션이 결혼을 기점으로 변화한 것은 유명. 이유로서는 "아내가 나 때문에 부끄러워지면 안되니까"라고 이벤트에 함께 출연했던 하야시바라 메구미에게 말했다고 한다.(라디오 방송에서)
'00에 이길 수 있는 것은 xx뿐이다' 나 '00는 진짜로 xx'하다는 식의 말투를 각종 작품('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에서 자주 채용하는 경향이 있다.
다이치 아키타로(감독, 개그 만화 보기좋은 날 등)와는 교류가 있어서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사도 신생'을 공개하는 것과 동시에 다이치 감독의 단편 영화를 동시 상영했다. 이후 안노 작품에서 다이치의 작품, 연출 방법등에 오마주가 여기저기서 보이게 되었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 큐티 하니'등)
아니메 스타일의 캐릭터를 그리는 것이 서투르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실제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안노의 콘티나 러프 디자인을 보면 인물은 상당히 대충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단, 제네프로의 팜플렛에는 안노의 작화라고 보여지는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으며, 이로 볼 때 전혀 그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약력
1960년 5월 22일 야마구치 현 우베시 시 태생
1980년 사립 오사카 예술 대학 입학
1983년 대학 중퇴.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원화가로 채용되어 상경.
1984년 주식회사 가이낙스 설립에 참가
1998년 영화 러브 & 팝에서 실사판을 최초로 감독
1999년 TV 애니메이션 '그 남자 그여자의 사정'과 메이킹 비디오 'GAMERA 1999'의 감독을 동시에 맟는다. 소혹성 '안노 히데아키'가 명명된다.
2000년 만화가 안노 모요코와 결혼
2006년 카라(애니메이션 제작회사)를 설립
감독작품
톱을 노려라 (OVA)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TV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TV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영화)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영화)
러브 & 팝 (실사 영화)
GAMERA 1999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TV 애니메이션)
식일 (실사 영화)
유성과장 (실사 영화)
큐티 하니 (실사 영화)
Re : 큐티 하니 (OVA)
스트링스~ 사랑과 인연의 여로 (인형 영화 일본어 판)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 (영화)
그 외 애니메이션 작품
극장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원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원화)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 (작화 감독, 스페셜 이펙트 아티스트)
반딧불의 묘 (원화)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메카 디자인)
TV 애니메이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원화)
마호로메틱 (오프닝 애니메이션 그림 콘티)
에비츄 (작화)
아베노바시 마법 상점가 (원화, 메카 작감, 최종화 그림 콘티, 목소리)
슈가슈가룬 (오프닝, 엔딩, 애니메이션 그림 콘티, 연출)
OVA
장갑거신 나이트 (원화)
메가존 23 (원화)
크림 레몬 PART4 POPCHASER (원화)
자이언트 로보 THE ANIMATION (어반 타이틀)
프리크리 (감수, 원화, 우정 메카 작감)
톱을 노려라2! (감수, 그림 콘티, 원화)
출연 작품
드래곤 퀘스트 판타지아 비디오 (용왕 역 1966년, 제작 스텝으로서 이펙트 애니메이션 연출도 담당)
위험한 형사 포에버 THE MOVIE (수상한 남자 역, 1988년, 나리타 유스케 감독)
차의 맛 (감독 역, 2003년, 이시이 카츠히토 감독)
사랑의 문 (여관 경영자 부부 역 카메오. 부인 역은 안노 모요코, 2004년, 마츠오 스즈키) 해당 극중 등장 애니메이션 '불가사의 실험체 기바렝거 메카닉 디자인 &연출도 담당
트루 러브 (니시무라 케이스케 역 2006년, 후지 테레비 P&G 판텐 드라마 스페셜)
나이스의 숲 ~ Thr First Contact ~ (원화맨 해스터 역, 이시이 카츠히토, 미키 슌이치로, ANIKI 감독 작품)
일본 침몰 (야마시로 교수의 사위 역, 2006년, 제작 스텝으로서 메카 디자인도 담당)
캐치볼 가게 (선대 캐치볼 가게 주인 역, 2006년, 오사키 아키라 제1회 감독 작품)
사쿠란 (다마기쿠의 손님 역, 2007년, 원작 안노 모요코, 니나가와 미카 감독 작품)
등장 작품
푸른 불꽃 (시마모토 카즈히코 작, 소학관)
안노를 모델로 한 캐릭터 '오오사카 예술 대학 학생으로 훗날 에반게리온을 감독하게 되는 안노 히데아키'가 등장.
각주
1. 예 : 최종화의 시츄에이션, 설정등에 표류 교실(우메즈 카즈오 작 SF만화)과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2. 예 : 제 1화 어반 타이틀, 덤 극장 등
3. 예 : 22화, 구 극장판 26화의 창 씬, 일부 사도의 조형은 표류 교실에서. 마기 내부는 나는 신고(우메즈 카즈오 작 SF만화)에서. 칠드런의 설정은 일부와 23화에 있는 에피소드는 14세(우메즈 카즈오 작 SF만화)에서 유용.
4. 예 : 에반게리온 구 극장판 제 25화
5. 오리지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본인이 다양한 곳에서 말하고 있다. 일례로 코믹 1권의 소신표명문과 스키조 에반겔리온에서의 '나같이 아니메나 만화만 보고 자란 세대는 확하고 떠오른 것이 대부분 어딘가에서 따온 것으로, 때때로 싫어질 때가 있다' 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들 수 있다. 본인 이외에도 타케쿠마 켄타로가 '스키조 에반겔리온'에서 GAINAX의 오리지널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6. 아마도 수수께끼의 원반 UFO(SF특촬 드라마)에 나오는 지구방위조직 SHADO (에반겔리온에서는 NERV의 모델)로부터 이름을 따왔다고 생각된다. 상세한 것은 파라노 에반겔리온 50페이지에서.
7. 파라노 에반겔리온 34페이지.
8. 파라노 에반겔리온 66페이지.
9. 파라노 에반겔리온 63페이지.
10. 스키조 에반겔리온에서.
11. 스키조 에반겔리온 134 페이지.
12. 본인 공식 사이트의 '개인 이력'에서.